글로벌로는 볼보트럭, 국내로는 이노레드로 대표되는 동영상의 광풍 이후, 디지털 마케팅 업계는 큰 이슈 없이 상당히 잔잔한 몇년을 보내왔다.

퍼포먼스 마케팅은 용어만 새롭지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라서 물 흐르듯 업계에 녹아들었고, 한때 관심이 이는 듯 하던 SEO도 양아치 업체들의 난립과 메이저 플레이어의 부재로 흐지부지 그냥 자리에 눌러앉는 느낌이다. 사실 확 하고 바람이 불려면 검색광고에서의 이엠넷이나 에코같은 데가 나와줘야 하는데, SEO에는 아직 시장을 멱살잡고 이끌 대규모 사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센트 코리아 박세용 대표님 뭐하십니까? 어센트 정도면 지금쯤 한 400억 땡겨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나마 최근 비어있는 화제의 자리를 어느정도 채워주고 있는 것이 둘 있으니, 바로 블링크 코퍼레이션이 꽃피운 미디어 커머스와 그로스해킹이다. 

 

그로스해킹의 정의

 

그로스해킹이란 무엇일까.

구글링을 해보았다.

그로스해킹의 정의 구글 검색화면. 내가 봤어 다 봤어.

그로스해킹을 설명하는 많은 글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가지이다.

1. 션 앨리스가 제일 먼저 이 단어를 사용했다.

2.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으로 널리 퍼졌다.

그 외에는 다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을 어느정도 모아서 설명한 글이 있어 소개한다.

http://icunow.co.kr/growthhacking-series1/

음... 누가 나한테 저 정의들의 공통점을 좀 알려줘봐? 하나에 대한 개념이 저렇게 제각각일 수 있나?

게다가 어쩜 저렇게 추상적일 수가 있지?

고영혁과 아론긴은 둘 다 지속적인 성장을 말하지만, 고영혁의 정의는 Sustainability에, 아론긴의 정의는 자동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라이언 홀리데이가 말한 "모호한 개념을 추구하는 마케터"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고, 벤 레비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거르는게 답. 심지어 션 엘리스의 정의조차 지금 그로스해킹을 말하는 사람들의 얘기와 다른 듯 하다.

 

그로스해킹 이전의 개념들

"마케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미국 마케팅 협회(AMA)에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현재 AMA는 지난 2017년에 마케팅을 "the activity, set of institutions, and processes for creating, communicating, delivering, and exchanging offerings that have value for customers, clients, partners, and society at large"라고 정의했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도 역시 그 시대에 맞는 정의가 존재했는데, 20년 전의 얘기라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두가지의 개념이 있다. "제품의 기획부터 판매까지", 그리고 "일련의 활동". 그 일련이라는 게 영어로는 systematic이었던가 뭐 그랬을거다. 이게 내가 말하고 싶은 첫번째.

 

둘째, 페이스북에서 여러차례 짧게 밝힌 바 있지만, 전통적인 마케팅에서도 데이터는 중요했다. TV 광고를 위해서 타겟의 라이프스타일의 다각도로 정의하고,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냈다. Xports를 전면에 내세운 닥터페퍼 광고를 Ripley's Believe It or Not이라던가 Jerry Springer Show에 내보내는 일은 없었다. 이를 위해 광고회사들은 엄청난 연회비를 리서치 회사에 제공하고, 회원 전용의 온라인 서비스를 받았다. 이미 20년도 더 이전의 얘기다. 오죽하면 우리 교수님이 "니가 리서치 방법론을 만들면 3대가 먹고 살거다"라고 하셨을까. 다만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처럼 다각도의, 세밀한 고객 행동 단계에서의 측정이 불가능했을 뿐이다. 라이언 홀리데이는 틀렸다.

 

다음으로, SEO에서 그 O, 즉 Optimization이 지향하는 바는 "검색결과 화면에서의 상위 노출"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Converison Optimization이라는 개념을 더하게 되었다. 그냥 닥치고 상위 노출이나 유입 증가가 아니라, 사업적 성과에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개념이지만, 당시는 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후 SEO 컨설턴트들은 단지 검색엔진을 상대하는 테크닉 뿐 아니라 사이트 방문 후의 성과를 위한 Landing Page Optimization, Consumer Journey Optimization까지 업무 영역을 넓혔다. 우리가 지금 UX 최적화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검색광고 마케터들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더 넓게 보자면 퍼포먼스 마케팅이라는 것 자체가 사이트 방문 이후의 고객 활동을 최적화의 지표로 삼고 있다. 당연히 그에 따른 제안과 시험이 뒤따르지. 

 

마지막, 샘플링과 AB 테스트. 아 내가 이것까지 설명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마케팅에 관심 있거나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볼테니.

 

자, 저 네가지의 중에 그로스해킹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로스해킹으로 인해 부정된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봐라. 없다. 단언컨데 없다. 동시에, 그로스해킹에 없는 것도 없다. 

 

그로스해킹은 방법론인가 개념인가

Value Proposition이라는게 있다. 이건 개념적으로 정의되는 슬로건과 달리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구체적인 가치를 전달한다. 랜드로버의 예를 들자면 ""Go Beyond" 한계를 넘어!"가 슬로건이고 , Value Proposition은 "Land Rover's ad invites its readers to get a taste of adventure, whatever your tastes"가 된다.(출처: http://blog.naver.com/chatton03?Redirect=Log&logNo=30122309402). 종종 사업규모나 시장지위 목표(아시아 NO.1 등)을 활용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전략 사이드의 사람들은 말한다. 무언가 한두문장으로 구체화할 수 없다면, 그건 뭘 하고 싶은건지 모르는 거라고. 

 

그로스해킹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건 그로스해킹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실제 그로스해킹의 예로 사용되었던 것들을 살펴보자. 초기에 그로스해킹의 대표적인 사례는 에어비앤비나 핫메일이 빠지지 않았다. 그 사례들은 전형적인 "돈을 들이지 않고 사용자의 동선에 파고 들어 사업 성과를 이루어내는" 활동들이다. 아마도 그래서 Hacking이라는 말이 붙지 않았을까? 지금 그로스해킹을 말하는 사람들은 모든, 정말 모든 활동을 하는 것이 그로스해킹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기획, 채널, 컨텐츠, 메시지, UX/UI, 그리고 데이터 분석까지. 심지어 사용자 경험을 높이기 위한 웹사이트의 기술적 최적화, 즉 개발과 코딩이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저기요, 이 세상 어떤 업무든 모든 걸 다 하는 게 하나의 분야가 될 수 있어요?

 

모든 게 다 관여된다는 것은, 시간에 따라 근본의 개념이 변한다는 것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정의가 다르고 다양한 사례를 관통하는 하나의 무언가가 없다는 것은 그로스해킹이 정확히 어떤 업무 또는 방법론으로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그로스해킹은 방법론인가 개념인가.

 

이제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IMC라는게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예전에는 캠페인 한번 할 때 PR과 커머셜과 프로모션이 다 따로 놀았던 것을 하나의 큰 목표를 공유하고 지향하되 각각에 최적화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최단기간 점령이라는 전략적 목표가 있는데 어떤 놈들이 "점령"만 보고 전력누수 최소를 위해 우회기동하는 그런 일을 없게 하는거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건데, 모든 건 다 당연하기 이전의 시대가 있었다. IMC는 방법론이 아니라 개념이다. 그로스해킹을 보면 개념 같은데, 다들 방법론으로 착각하는 듯하다. 실제로 영문으로 정의된 그로스해킹을 찾아보면 Umbrella strategy라는 말이 나온다. 엄브렐러. 이게 모든 걸 말해준다.

 

무엇보다 방법론이라는 건 말이지, 저쪽에서 적용된 기본 프로세스가 다른 쪽에서도 스킨만 바꾼 채 역할을 할 때 비로소 방법론이라는 이름이 붙는거다. 이놈 저놈이 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같은 이름이 붙고 방법론이 되나.

 

그로스해커는 존재하는가

그로스해킹이 개념이라면 그로스해커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IMCer가 없듯.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로스해커가 있다. 일부 회사는 그로스해킹팀이라는 조직도 보유하고 있다. 

업무 관점에서 살펴보자. 그로스해커로서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획부터 분석까지 다 해야 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로만 구성해보자. 특정 "그로스해커"가 지누스 심재형처럼 사업 기획하고 어센트 박세용처럼 컨텐츠 설계하고 비비다스 정종필처럼 미디어 다루고 아티언스 최윤희처럼 웹사이트 SEO 하고 발크 제임스처럼 UX/UI 개선하고 마이티하이브 김선영처럼 데이터 분석할 수 있어? 각각의 업무영역에서 "프로"소리를 듣고 "컨설팅"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과 경험히 필요할 것 같나? 

10점짜리 능력 10개를 모아서 100점인 사람은 현장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내가 다루는 업무분야 중 검색광고 쪽의 얘기를 해보자.

마케터는 광고를 기획하고 적절한 매체 운영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광고는 AB 테스트를 주기적으로 반복하고, 랜딩 페이지 역시 부분수정, 다른 페이지로의 변경, 개편, 또는 마이크로 사이트 제작 등으로 테스트 한다.

광고비와 클릭, 전환의 관계에 따라 키워드의 성과 효율성을 판단하고 보다 투자가치가 높은 키워드에 집중하며, 이탈률을 통한 질적 분석도 병행한다. 성/연령과 지역 같은 분석도 물론 이루어지고, 그 분석들에 따라 지속적인 최적화가 진행된다.

종종 웹사이트가 사용자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지 구글 사이트 스피드도 돌려보고, AB 테스트 자동화 툴을 이용해서 CTA 버튼도 이리저리 바꿔본다.

실제 현업에서 여건에 따라 이 모든 걸 다 하지는 않을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업무들이다.

이게 그로스해커들이 우끼끼 우끼끼 하는 거랑 뭐가 다르게?

 

그로스해커를 보는 내 시선은 이렇다. 그냥 좋은 마케터. 좋은 퍼포먼스 마케터.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던 마케터와의 차이는,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권한의 문제인 듯 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업무에 따라 일정 규모의 독립된 조직을 구성하고, 각 조직이 권한을 갖는다. 그리고 독립된 조직들 사이에서의 업무조율과 조직의 보호 논리, 그리고 때로는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에 따라 업무가 늦어지고 협업의 장애물이 생긴다. 웹기획자가 디자인에 지랄을 안하는거야 못하는거야? 거꾸로 디자이너가 기획팀에 반론을 제기 안하는거야 못하는거야? 그냥 조직의 벽 때문이다.

그로스해킹이란 이름을 붙이면 이 권한 자체가 한 조직 또는 사람에게 집중되고, 당연히 빠른 의사결정과 행동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로스해킹을 "스타트업에 적합하다"라고 부르는 것이다. 작은 조직은 많은 업무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좀 못된 시선으로 본다면, 그냥 허울 좋은 이름 주고 애들 갈아마시는거다. "뭐든지 담당 팀장"이랄까.

 

그로스해커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

많은 교육기관에서 그로스해커 양성과정 이런걸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이 글에 공감한 사람이라면 부질없다는 것을 느낄거다.

결국, 좋은 마케터가 되면 된다. 가장 근본에 충실한 마케터, 성과지향적인 마케터.

 

여기에, 인접한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시선이 필요하다. SEO 강의에서 매번 하는 얘기인데, SEO적인 관점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가 있다. 개발자가 단지 멋지게 작동하는 웹사이트가 아니라 검색엔진이 잘 살펴볼 수 있는 웹사이트"도"고려하라 뭐 이런 얘기. 

지금 내가 하는 마케팅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비록 나는 미디어 플래닝을 담당하고 있지만 "종합적인 마케팅적 관점"에서 랜딩 페이지도 보고 방문자 데이터 분석도 하고 마 밥도 먹고 으이 사우나도 가고 마 다 해써. 마케터지만 웹사이트의 로딩 속도나 모바일에서의 폰트 사이즈 때문에 전환이 떨어진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걸 개선하는 건 개발자에게 넘기되, 마케터가 해당 이슈를 의심하고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메인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무엇이 주역량이고 부역량인지 명확히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10점짜리 열개를 가지고 100점이라며 "나는 다재다능한 그로스해커요"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실력 있는 *** 마케터가 그로스해킹의 관점에서 프로세스를 관리하는거지, "*주만에 완성하는 그로스해킹 특별 양성 코스"라는 건 존재할 수 없다. 아, 뭐 그냥 교양 수업 정도라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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