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작년 8월 4일, 아래의 글을 올렸다.

[Other Digital Marketing] - 난 단지 치킨을 주문했을 뿐인데,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니.

나님의 빠른 판단에, 배달의 민족이 실은 자기네 일도 아닌데 고작 금요일 밤 정도에 새벽까지 임원을 대기하는 정도의 얄팍한 노력만을 얹어 하나의 PR 모범사례 같은게 나와주었다. 개인적으로도, 잡지사 소셜 미디어의 사기극을 파헤친 글 이후 가장 많은 방문자를 가진 단일 게시물이었으며, 애드센스 수익도 무려 1만원(샹...)이나 벌어주었다. 


정확히 1년 후, 당시 사건 인지 반나절만에 내게 기-승-전의 피드백을 날렸던 배민 홍보파트에서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일 이후 배민은 적어도 유사한 일이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무엇을 준비해왔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메시지는 개인 페메로 왔으며, 딱히 대외적으로 알릴 거리는 아니나 이슈 제기자인 나는 알았으면 한다고, 이 내용으로 배민이 달리 주목받지는 않았으면 한다는 당부와 함께.


그러나 누누히 밝혔듯 나는 배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배민 뿐 아니라 요기요 등 동일한 카테고리의 서비스 및 야놀자와 같은 O2O 서비스 회사들을 마땅치 않아한다. 아이템은 시작은 혁신이었을 지 모르지만 그 이후 여전히 남은 전근대적 프로세스도 불만이고, 그걸 교묘한 말장난으로 덮으려 드는 건 더욱 짜증난다. 회사의 성장에 따라 연봉이 높아졌을 뿐인데 엘리트 인력으로 평생 살아온 양 거들먹거리는, 회사의 규모를 자신의 레벨과 착각하는 전형적인 인간들도 눈에 거슬리고 . 일부 주니어들이 회사와 김대표에 대해 거의 조선노동당과 어버이 수령님 레벨의 충성도를 대외적으로 내뱉는 것도 같잖다. 여전히 남아있는지 모르지만, 급성장한 스타트업이 대부분 겪는 내부 고인물들의 판놀이도 없었던 게 아니다. 딱히 배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배민과 같은 회사를 배민이 대표한다고 보는게 더 솔직할 듯 하다.


맘에 안 드니까, 그냥 여기에 확 까 버린다. 담당자의 당부를 무시하고.


아래는 담당자(공식적인 컨택이 아니니, 배민이 아닌 담당자라고만 부르겠다)가 보내오신 지난 1년간의 변화다. 이건 내 해석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일이라 판단하여 문자 그대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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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소 주문접수앱 개인정보 관련 보안 업데이트: 개인정보 유출 관련 보안 업데이트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동의한 범위 외에 일부 배달대행업체의 불법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 나갈 예정입니다.

▷안심번호 전면 확대: 고객이 배달의민족으로 앱 내 주문 결제를 할 때, 고객의 개인정보 유출 및 목적 외 활용을 더 철저히 방지하기 위해 기존에는 안심번호 미적용(Off)이 기본으로 되어 있던 것을 적용(On)을 기본으로 하고 원치 않는 분만 해제하는 것으로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일부 배달업소의 반발이 있었으나 현재는 잘 정착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개인정보 이슈 대응 태스크포스(TF) 운영: 개인정보 보호 위반 사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피해 고객이 발생할 경우 거주지 이전 지원, 심리 치료 지원 등 물리적, 정신적 보호와 함께 법적인 대응도 지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개인정보가 고객이 동의한 범위 내에서만 사용하도록 사전에 지속적으로 업소 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고객보호팀 및 케어 센터 출범: 회사 내에 개인정보 관련 이슈를 상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팀을 정규 조직으로 편성했습니다. 개인정보 관련 이슈로 피해를 본 고객에 대한 보호 조치를 위한 조직적 시스템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존 고객센터와는 별도로 케어센터를 마련해 개인정보 이슈, 고객-업주 간 분쟁, 업주-업주 간 분쟁을 중재하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사설 경호 서비스 제공: 사설 경호 업체와 계약해 음식 주문, 배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신변의 위협 등 위험으로부터 고객을 보호하는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배달의민족, 배민라이더스 등을 이용하는 소비자 고객이나 자영업자 업주는 음식 주문 및 배달을 둘러싸고 언어적, 신체적 위협 등 위험에 처할 경우 고객센터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배달음식 이용 고객뿐 아니라 음식점 업주님에게도 서비스가 제공되며,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에스텍시스템의 전문 경호 요원을 파견해 안전을 지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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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의 조치들을 하나하나 기술적으로 뜯어보면 완결성에는 아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당장 작년의 그 일 이후에도 자잘한 이슈는 있어왔다. 

솔직히, 어떤 일들은 서비스 업종에서 뭔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고, 어떤 일들은 이 일과 마찬가지도 사실은 배민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초점은 그게 아니다. 특정 시점에서 특정의 일이 얼마나 제대로 되어있는가가 아니라, 그 방향성을 보았으면 한다. 


1년 전의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금요일 6시에 글을 올린 후, 페북에 공유를 요청했고, 배민에 근무중인 동생(홍보도 보안도 영업도 아니 완전하 다른 직군이다)에게 혹시나 내부 공유가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약 30분 후 팀장에게 보고가 되었다는 피드백이 왔다.

그 직후 대리 과장이 아니라 임원들이 소집되었고, 다음날 홍보실장은 완전히 파악된 개요와 밤 사이 이루어진 조치, 그리고 주말을 포함한 3일간의 단기 대책을 페메로 보내왔다.

일이 어느정도 정리된 후, 그저 제보자에 불과한 내게 한번 더 피드백이 온 것은 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일종의 랩업 메시지가 왔다.


1년 전에도 나는 배민의 움직임을 서비스와 보안이 아니라 PR의 관점에서 베스트 케이스로 소개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세미나에서 대학 강의에서 그리고 술자리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말이 있다. PR을 하는 사람들은 커머셜을 하는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고. 

[Other Digital Marketing] - 마케팅, 광고, PR의 관계 및 정의를 알려주마


배민에서 배울 수 있는 위기 관리 교훈을, 1년이 지나 또 한번 살펴보자. 

1. 인정할 것. 감추고, 선택적으로 알리는 것은 커머셜과 변호사에게 필요한 소양이다. 거짓은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내가 당시 초기 연락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표현은 "실제 누구의 잘못인가를 떠나 서비스 관련자로 그리고 업계의 리더로 배민은 책임을 느끼고 대응하고자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 하나로 적어도 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은 게임 오버다. "어머 왜 우리 시스템이 아닌데 여기서 지랄이야. 우리 이름 빼"라고 했다면... 아 그렇게 나왔어야 물고 뜯고 더 재미졌을텐데 아쉽다.

2. 빨라야 한다. 완벽을 위해 뭉개는 동안, 밖에서는 엄청난 억측과 오해가 쌓여간다. 그 이후는 무슨 말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골든 타임은 위기 관리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주일만 지났다면, 만명 이상이 읽은 내 글을 통해 "허허 배민 서비스가 문제구먼"이라고 섣불리 결론지은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3. 대표성이 있는 메신저를 정해야 한다. 입사 3개월차가 나와서 엄청난 대책발표를 해봐야 아무도 안 믿는다. 배민은 초기부터 홍보파트의 수장이 등장했는데, 동일 건으로 연락이 왔던 다른 관련사들과 직급 자체가 달랐다.

4. 행동해야 한다. 국내 대기업에서 위기 후 대책을 이행하지 않거나 꼼수를 부려 역풍을 맞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예를 들면 사회를 위해 기여하겠다며 재단을 만들었는데 그 재단을 가족이 장악한다던가, 아니면 그 재단이 결국 파운더를 위하는 재단이 된다던가. 배인은 "안내문"이 아니라 "조치사항"을 초기부터 만들었다.

5. 프로세스화. 위기 관리의 핵심은 단기적으로 소나기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앞으로는"이 되어야 한다. 배민이 1년 후에 저렇게 내게 메시지를 보내왔다는 것은 그 때의 조치를 일회성으로 넘긴 것이 아니라 내부 프로세스화했다는 것이다. 프로세스가 있다는 것은 재발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배민처럼만 해라. 남처럼 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욕은 안 먹을거다.



** 제발 PR하는 놈들은 자기 일하는 자세도 좀 PR처럼 해라. 광고주가 모른다고 대충 속이고, 협력업체에도 거짓말해서 수수료 슈킹하고, 혼날까봐 보고 중간에서 먹고 그런 건 PR적인 직업윤리가 아니다. 어디에서도 안 되는 거지만 PR하는 애들은 더 그러면 안된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니들이 마케팅 바닥에서는 고고한 선비가 되어줘야지, 니들까지 아사리판으로 들어오면 어떡하냐.


** PR 한다는 놈이면 한국말로는 같은 위기관리여도 크라이시스 매니지먼트랑 리스트 매니지먼트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발음하기 더 편한 걸 그냥 골라쓰느라 막 쓰는거냐?


** 나 배민 싫어하는데, 자꾸 배민이 이렇게 나오니까 진짜 힘들다. 요기요 쓰다가 작년 8월부터 배민 쓰는데, 때려치우려고 하면 이런거 하고 때려치우려고 하면 저런거 하고. 저번에도 막 갈아타려는 찰나에 치믈리에 사건 대응으로 눌러 앉히더니. 이놈들 구제불능이라고 빨리 확신하고 다른데로 가야 하는데 매번 타이밍을 놓치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회원가입은 안 했다. 아직 비회원 주문한다. 니들은 평생 나를 충성고객으로 분류하지 못할 것이야 후후후 


** 앞에서도 밝혔지만 배민 홍보 담당자는 이 일로 배민이 특별한 관심을 받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관심을 제발 내게 좀 줘. 다들 내 글 보고 기사쓰고 그랬으면서 왜 나한테는 한명도 연락을 안 하냐. 더피알도 그렇고. 나 조만간 슈링크 받을거니까 예뻐지면 연락 좀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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